수많은 세월을 지내오면서 생각해보니 가족여행은 1년에 2~3번 정도는 연례행사처럼 한 것 같다. 그런데 엄마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생각해보아도 어처구니가 없다. 이제는 직장도 그만둔 상태라 큰맘 먹고 어머니 살아계실 때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 , 가보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들이 있으면 가급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드려야겠다고 진작 생각은 했는데 그것을 실천하기가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길고 긴 여름날을 집에서 계신 엄마에게 보상이라도 해드리고 싶었고 여름날은 너무 부담스럽고 짜증 나는 시간들이라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바다가 있는 강릉 쪽으로 여행을 하리라 마음먹었었다. 당일 다녀오는 것은 나이가 95세라 무리일 것이 자명하기에 2박 3일 일정으로 잡았다. 마침 강릉에는 언니가 살고 있어 얼굴도 보고 얼마 전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했으니 집들이 겸 숙박도 해결하면 될 것 같았다. 모처럼 만에 장모가 여행을 왔으니 언니, 형부가 신경 좀 쓰겠지 먹을거리 , 볼거리 , 자는 것까지 ㅋㅋ 그럼 나는 많은 것을 한방에 해결하는 셈이다. 안전하게 잘 모시고 갔다가 불편함이 없도록 잘 모시고 오면 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면 역할이었다.
그래도 언니네 집에 가는 길에 그냥 갈 수는 없어 고추장을 비롯해서 더덕장아찌, 아카시아 꿀, 형부가 좋아하는 약밥과 송편을 담은 꾸러미를 만들고 집에서 키우는 동양란 화분을 5개 잘 가져갈 수 있도록 상자에 포장했다. 언젠가 가족모임에서 집들이를 했지만 직장 관계로 함께 하지 못했기에 집안 정리도 할 겸 정성 들여 키운 화분이기에 선물로 정하였다. 주소를 검색하고 강릉으로 향하는 길~ 집에서 출발해서 평창까지 국도를 이용하였기에 가을이 깊어가는 들판의 풍경을 보면서 감성도 자극했다. 중간중간 백미러로 엄마의 표정도 읽어가면서 지난날의 이야기도 물어보고, 가족들의 이야기도 나누며 지루하지 않도록 하였다. 두 번 정도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하였고, 코로나 때문에 가급적 사람들과 마추 지지 않도록 하는 게 나의 유일한 배려였다. 출발 전 음료와 약간의 간식을 준비했기에 ~ 안전하게 강릉 언니네 까지 가는 것만이 유일한 오늘의 목적이므로 조심스러웠다. 어느새 목적지인 강릉대학교 근처 네네치킨집이 보였다 우와~~ 난 기쁨도 잠시 빨리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눕고 싶었다. 심적 부담이 있었기에 아마도 더 피곤함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아파트로 이동 여장을 풀었다. 네네치킨 한 마리를 포장해서 갔었기에 간식으로 약간의 배고픔을 해결하니 룰루랄라 내 집인 양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주인장이 돌아올 때까지 마음껏 자유를 누렸다. 언니에 집을 처음 방문한지라 구석구석 집 구경을 하고는 안방에 우리는 가방을 풀었다.
우리는 아침을 일찍먹고 언니 형부와 함께 아르떼 뮤지엄을 찾았다. 티켓팅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영원한 자연을 주제로 하는 환상의 세계, 몰입의 세계가 가는 곳마다 , 끝없이 펼쳐졌다. 무지갯빛 강렬한 색채와 감각이 있는 사운드 , 품격 있는 다채로운 미디어아트가 드 넓은 공간마다 전개되었다. 잠시나마 모든 것을 비우고 오롯이 자아를 찾아보는 공간으로 멋지게 , 힐링을 맛보는 느낌이었다. 전설 속에 존재하는 꽃사슴이 나에게 안부를 묻는 것처럼 다가오고 , 파도소리가 철썩하고 밀려오는 듯하고, 코스모스 휘날리는 꽃방에 몽롱하게 갇혀 헤어나질 못하는 나를 느끼고, 1,500평 실내공간에 황홀함이 가득하게 번진다. 오픈한 지가 2021 겨울이라고 하니 강릉 경포대 근처에 오면 한번 들러보면 좋다 휠체어를 이용 엄마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사람들이 많은지라 서둘러 나왔다. 뮤지엄 옆에 바로 아쿠아리움이 있어 동물원을 생각해 다양한 바다생물들을 관람했다. 수달도 만나고 해마, 상어 , 전기메기 , 희귀한 해파리, 점박이물범 등 수족관 안에서 재롱 피는 모습을 잠시나마 바다생물들과 소통을 나누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오전내내 돌아다닌 덕에 배꼽시계가 발 달라고 조르는 것 같았다. 언니, 형부가 꼬막 볶음밥 집에 가서 먹어야 한다고 하길래 설마 제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지 했는데... 앗! 예상이 빗나갔다. 100명 약 1시간 정도는 기다리란다. 성격이 깔 칠한 나는 벌써 다른 곳으로 갔는데 그러자고 할 수도 없고 성격을 꾹 꾹 누르느라 식은땀이 난 듯하다. 겨우 차례가 되어 들어갔으나 밥을 어찌 먹었는지 잘 모르겠다. 빨리 탈출해서 경포대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후식으로 커피와 과일을 먹었다.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카페라테를 마시는 엄마는 무엇을 생각하고 계실까?
대견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면 굽이 굽이 살아오신 어머니의 일생이 아니던가! 언젠가 나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태어나도 난 엄마의 딸로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하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오는 것 같아 엄마의 건강이 염려스러워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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