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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칭찬도 허물도 마음에 두지 말라

by 레인아로마 2023.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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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비방을 들을 때, 그 칭찬과 비방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도심을 기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가르침


자경십문중 아홉 번째,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이는 너무나 당연한 가르침이요. 범하여서는 좋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남의 허물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말하기를 즐거워합니다. 칭찬보다는 허물 들추기를 더 많이 합니다. 걱정하는 듯 남의 허물을 말하지만, 그 뒤에는 '나'의 허물없음을 자랑하거나 자기의 허물에 대한 자위가 섞여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허물없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부처님 처럼 완벽한 분이 아니면 어떠한 허물이라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크나큰 죄악이 아니라 , 누구나 짓고 짖기 마련인 허물이라면 덮어버리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작은 허물을 말하기 시작하고 감정을 섞어서 큰일이나 난 것처럼 들먹거리기 시작하면 굉장한 일로 비치게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국인 카필라국과 이웃나라 코올리국도 사소한 말싸움 때문에 전투 일보직전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늘을 보며 피어나는 영월 동강할미꽃

부처님이 성불하신 지 몇 년이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국의 동쪽에는 로히강이 흐르고 강  건 너에는 코올리국이 있다고 합니다.  문제의 발단은 양쪽나라를 끼고 있는 로히니강의 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가뭄이 계속된 어느 해 여름곡식이 타 들어가기 시작하자 양국의 농민들은 강둑에 서서 '어떻게 하면 많은 물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를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코올리국의 한 청년이 소리쳤습니다.
"어어이, 이 강물을 양쪽나라가 함께 사용하면 두나라 곡식이 모두 말라죽을 것이다 물은 우리 쪽에서만 쓸 테니 모두 이리로 보내라."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너희들만 물을 쓰면 우리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가을이 되어 금은보화 짊어지고 너희 나라로 가서 곡식을 나눠달라며 사정이라도 하란 말이냐? 어림없다. 강물은 이쪽으로 모두 끌어들여야 해!" 이렇게 서로 물줄기를 자기 나라 쪽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며 다투었고, 차츰 감정이 격해지자 욕설이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개새끼들처럼 자기네 누이나 동생들과 동침하는 카필라 놈들아!  한번 붙어볼 테냐?" " 대추나무에 둥지를 틀고 사는 코올리 족속들아!  얼마든지 오너라. 단번에 작살을 내버릴 테니! " 마침내 양국의 농민들은 상대에 대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허물을 만들어 소문을 퍼뜨렸고, 이 사실이 온 나라로 전해지자 석가족들도 코올리족도 모두 흥분 속에 휩싸였습니다. " 누이와 동침하는 사나이의 주먹맛을 보여주자." " 대추나무 사나이의 솜씨를 보여주자." 마침내 두 나라는 전쟁직전의 험악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카필라의 교외에 있는 대림에 머물러 계시다가 이 위기를 보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홀로 공중을 날아 로히니강의 상공에서 좌선을 하는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두 나라의 왕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모습을 보자 무기를 버리고 예배하였습니다
." 왕이여, 이것은 무엇을 위한 싸움입니까?" " 저는 모릅니다." "그럼 누가 알고 있습니까?" " 아마 장군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군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차례로 물어가다가 , 마지막으로 농민들에게 물어보니 물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전쟁의 원인을 알게 되자 부처님께서 물었습니다. "왕이여 물과 사람 중 무엇이 소중합니까? " "물보다는 사람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데 왜 물 때문에 훨씬 소중한 목숨을 버리려 하십니까? 그것도 전투를 하는 이유조차 분명히 모르는 싸움을!"
양국의 왕은 이 말씀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죽여 피의 강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처럼 사소하게 시작된 말 한마디가 능히 피바다 직전의 상태까지 몰고 갈 수 있습니다. 실로 구(口) 업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허물을 말하기 전에 자기의 허물부터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항상 자기를 돌아보며 살아가는 수행자가 본분을 잊고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어 중상모략 한다면 어찌 합당한 일이라 하겠습니까? 속인이든 출가승려든, 도를 닦는 이가 남을 헐뜯는 것은 도심을 근원적으로 등지는 행위가 될 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 때문에 야운스님은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 이 조항을 자경심문의 하나로 삽입한 것입니다.

좋은 소리 싫은 소리, 그 어느 것을 들을지라도 마음의 동요가 없어야 하느니라. 덕이 없으면서 남의 칭찬을 듣는다면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요, 허물이 있어 비난을 듣는다면 참으로 기뻐해야 할 일이다. 기뻐하면 잘못된 점을 찾아 반드시 고 칠 수 있게 되고, 부끄러워하면 도를 더욱 부지런히 닦고자 할 것이다.

좋은 말에나 나쁜 말에나 무심할 수 있고 배워야 한다는 이 말씀.  참으로 뼈 있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잘못했더라도 욕을 얻어먹으면 '이 자식이 욕을 해? 잘 만났다  오늘 한번 맛 좀 봐라.' 하면서 악을 쓰고 달려듭니다.  또 아부성 칭찬인 줄 알면서도 자기를 치켜 세워주면 은근히 좋아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잘못을 긍정할 줄 모르고 칭찬을 좋아하는 밑바닥에는 어떤 심리가 깔려 있습니까? '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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