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병원 입원은 힐링 시간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소중한 기회였다. (2부)

by 레인아로마 2023. 1. 21.
반응형

말에서 떨어져 하얗게 밤을 지낸 다음 날~ 도저히 이대로는 출근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직장 상사에게 휴일(일요일)이지만 아마도 일신상의 이유로 당분간 출근을 하기가 힘들다고 메시지를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냐고? 나는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고맙게도 한걸음에 달려와 미련을 떨고 있는 나를 나무라시며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입원 수속을 밟아 주셨다. 휠체어를 타고 응급실로 들어가  당직 의사와 면담을 하고는 왼쪽 다리 엑스레이 촬영을 해보니 고관절에 금이 갔다고 하였다. 골절이 아니기에 수술은 안 해도 되는 상황이라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일단 큰 부담을 덜었다.  최소 6주 정도는 입원치료를 요한다니 준비를 해야만 했다. 언니들은 다들 멀리 있고 90이 넘는 엄마랑 생활하는지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였다. 천상 직장 동료들이 나의 처지를 잘 알고 있으니, 신세를 져야만 하는 형편이라  협조를 구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평정심을 찾으려는 나의 노력은 진행중

낙마사고로  최소  6주간의 치료를  요함 

1. 간병인이 오기까지 입원한 환자가  환자인 나를 간병했다.

나는 4인실 병실에 입원하였고, 필요한 물품들은 직원이 준비를 해 주었으며, 걸을 수 없는 상황이니 24시간  30일 동안 보살펴 주실  간병인을 병원 측에 부탁하였다. 병원에서는 요즈음  간병인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시며 노력해 보겠다고 하였기에 나는 하루빨리  간병인이 나타나기를 기도했다. 직원들은 저녁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혼자이니 제일 급한 것이 화장실 문제였다. 통증도 심하고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어쩌랴혼자 휠체어를 타 보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어쩔 수 없이 맞은편 입원한 환자에게 SOS를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의  심정을 알기라도 하듯 움직여서는 안 된다며  용기를 갖다 주었고  뒤처리까지 말끔하게 도와주었다. 처음에는 미안하기도 쑥스럽기도 하였는데 몸이 아프니 얼굴도 두꺼워지는 모양이다. 나는 그녀에게 환자가 환자를 돌보아 주어 너무 고맙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며칠이 지나서 그녀는 자기를 '선녀무당'이라며 소 개했다. 그녀가 나를 도와준 인연으로 조금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녀가 입원해 있는 동안은 심심하지 않았다. 병문안 온 나의 지인들에게 귀가 솔깃한 이야기도 해주고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도 해주고 하였으니 그녀가 어디가 아파서 온 지는 알 수 없으나 겉으로 보기에는 나이롱환자 같았다. 외출을 하기도 하고 하루에 빨간 뚜껑 독한 소주도 한 병씩 마시고, 구름과자도 몰래몰래 먹는 등  재미있는 환자였다. 긴 머리를 올려 묶은 모습은 꼭 선녀의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루에 한 번은 공부도 하는 엉뚱한 매력을 지닌 선녀무당!  내가 본 그녀의 모습은 비단결처럼 마음이 여리고 따스한 여인네였다. 다행히도 이틀이 지나니 간병인이 배정되었다. 얼마 동안은  간병인도 다른 위급 입원 환자보다는 편하게 나를  간병하였다고  생각한다. 휠체어를 탈 수 있으니 화장실까지 밀어주면 될 것이고, 3일에 한번 샤워를 해주면 되고, 나 역시 간병인을 배려하여 평소보다 물도 작게 마시고, 잠자리도 일찍 청했다.  눈을 감고는 궁색을 떨며 많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다. 같은 병실에 입원환자가 간병인을 못 구해서 애가 타면 나의 간병인에게  알바까지 하는 시간도 주었으니 말이다. 내가 도움을 받았듯이 나 역시 입원환자나 가족들의 마음도 헤아리는 기회가 되었다.  

2. 낙마로 이 모양이 되었다고 사실을 고하지 못하였다.   

어느 날부터 장기간 출근을 안 하니 전화가 불이 난다. 얼마나 아파서 여러 날 출근을 하지 않느냐고? 나는 계단에서 미끄러져 고관절을 다쳐 오랜 기간 병가를 내었다고 우회하여 말하였다. 때가 9월 말일이니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단계로 계획하였던 일정도 많고 연말이니 큰 행사도 준비해야 하는데 내 모습이 이 모양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이 마음만 바쁘고 불편하였다. 누군가 이왕 이렇게 벌어진 일 아마도 쉬어가라는 뜻 이라며 시간 흐름에 맡겨보라고 하며 위안을 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내 평생 이렇게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해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움직 일 수가 없으니 사무실에 부탁하여 노트북으로 침대 위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한계가 있었다. 또한 모두 환자가 무슨 일을 하냐며 몸조리나 잘하란다. 그다음부터는 생각이 있는 동물인지라 이 생각, 저 생각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날들을 스캔해 보고 앞으로 어찌 생활해야 할지도 구상해 보고 나름대로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나를 반성해 보는 시간 등등 여러 각도에서 나는 어떤 인간인지?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지?  철학자가 되어 보는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힐링의 시간이었다.

3. 엄마에게 나의 입원소식은 폭풍이었다.

내가 다치는 날은 엄마가 이모들과 외갓집에서 함께 있는 기간이라 안심을 하고 있었지만,  이모들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앞 일이 큰일이었다. 이모들이 왔는데 인사를 안 가니 평소와 다른 행동에 엄마가 전화를 하신다. 나의 신세가 이러니 나는 연말이라  바쁘고,  출장으로 바쁘다는 핑계를 되었지만, 언제까지  엄마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지 큰  고민이었는데  엄마가 언니에게 전화를 하여 사고 소식을 듣고는 난리가 났다. 이모들과 엄마에게  폭풍 같은 소식이었다. 나 역시 엄마에게 미안함과 송구함이 가득하여  속상하였다. 그래도 다행히 큰 고비를 넘긴 뒤라 며칠 더 있으면 된다고 하여 겨우 이모들과 엄마를 안심하게 하였다. 그 덕분에 큰 이모가 내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은  서울행을 접고  엄마를 보살펴주는 시간이 되었다.   

4. 기대했던  대만연수는 포기 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입원하는 동안 계획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제일 아쉬운 것은 대만 연수였다. 하필이면 한달여 남은 대만 연수 일정이지만 최소 6주가 입원이라고 하였으니, 꿈도 꾸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를 한다는 서류등을 보내어 불이익은 당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하듯이 나에게 보상처럼 주어진  연수의 기회!  아쉽지만 나의 것은 아니었나 보다.  난 지질히  복이 없구나 싶었다. 그래  이다음에 더 멋진 보상을 받자지금은 내 건강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때이니  재활에만 신경 써야 할 것이라고  나 자신을 토닥였다. 


입원한 지 한 달이 되니 어느 정도 걸을 수가 있어 서둘러  퇴원을 결정하였다. 

 한 달 동안  많은 환자를 만나고, 그에 가족들을 만나고 모두가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을 보았던 것 같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밖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직접 보았다. 나 역시  입원을 한 탓으로 나의 인생설계를 다시금 해 보았고, 인생교훈도 얻었다.  직장 일도 하나같이 걱정스럽고 집안 사정도 긍금하고  하여 퇴원을 결심하고 집에서 얼마간 재활을 할 애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수술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퇴원하는 날!  내 인생에서  다시는 말을 사랑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감사합니다.    

계속되는 제3부에서는  퇴원 후 재활기간에 있었던 별별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댓글

  • 현재글병원 입원은 힐링 시간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소중한 기회였다. (2부)

최신글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